** 이전 연성교환으로 다크램(@Devil_lamb)님께 받아온 누이라비 2차창작 소설.

** 본 글은 누이 X 라비 CP 요소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양지에 경배하고

Written by 다크램 (@Devil_lamb)


 


 

 

 

 

'하늘에 오른 오누이는 각각 해와 달이 되었으나, 누이가 밤이 무섭다 하니 오라비와 바꾸어 해가 되었다.'

 

'오라비와 바꾸어 해가 되었다.'

 

"누이, 무슨 일 있나요? 하루종일 책을 붙잡고."

"어머니……"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누이는 '해와 달' 동화책을 어머니 호랑이 산신 쪽으로 내밀었다. 

 

"이 대목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요."

"이건……"

 

누이가 짚은 부분은 해와 달 동화의 마지막 장면인, 오라비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누이를 위해 역할을 바꾸어 주는 부분이었다. 누이는 이렇게 해가 되고, 오라비는 달이 되었다. 

 

"이 대목의 어떤 점이 마음에 걸리나요?"

"어머니께서 전에 말씀해 주셨지요. 모든 이야기는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간다고."

"네, 맞아요. 모든 이야기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고, 그 운명을 따라 걸어야만 모든 결말에 도달하게 됩니다. 누이가 태양의 힘을 계승한 것도 그 결말이죠."

"오라버니가 달의 힘을 바꿔 준 것도 정해진 운명이죠?"

"맞아요. 태초부터 라비는 달의 힘을 계승할 운명이었어요. 두려워하는 누이를 위해 태양을 전해주는 것 자체가 라비의 운명이죠. 반복되는 운명, 이야기 속에서 누이를 외면히고 태양을 가져간 적도 있었지만 결국 올바르게 힘을 계승하지 못했죠."

 

어머니의 부드럽고 차가운 말을 듣고, 누이는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죠, 누이? 라비를 걱정하고 있나요?"

"걱정……"

 

누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머니, 저는 오라버니가 걱정되어요. 왜냐하면……"

 

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매시레전드가 개최된 후, 움브라는 경기장 뿐만 아니라 시놉시티 이곳저곳에서 출몰하며 테러를 일으켰다. 마치 정해졌던 이야기인 것 처럼, 동화 속 악당의 모습을 충실히 따르는 것 처럼. 

 라비도 그 중 한명으로, 주로 어둠을 타고 다가와 시놉시티 주민들을 홀려 밤새 씨름을 시키거나 싸움을 걸어 탈진하게 했다. 가끔 음식점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누이는 라비에 대한 소문들을 그저 스쳐가는 바람처럼 듣고 흘렸다.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경기장에서 라비의 모습을 몇 번이나 마주했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 속 라비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쓰지 않으려 했다. 

 

 "누이, 또 햇볓 쬐고 있는 거야?"

 "안녕, 신디."

 

 벤치에 누워있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살며시 눈을 뜬 누이가 웃으며 신디에게 인사를 건넸다. 신디와 피터, 그리고 스노우는 누이에게 처음 생긴 또래 친구였다. 어머니나 라비와 비교했을 때 함께한 시간은 짧지만, 그런 비교가 이상할 정도로 소중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배달은 다 끝난거야?"

 "아직, 이제 앨리스한테 가는 택배만 남아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마침 너도 보였고."

 

신디는 웃으며 누이 옆에 앉았다. 

 

 "다음 경기 일정이 나왔어. 난 이번에도 피터랑 앨리스랑 한 팀인데, 누이 너는?"

 "아 나는……"

 

 누이는 마스터 캣에게서 전달받은 대전표를 떠올렸다.

 

 "......나도 평소랑 똑같아. 마스터 캣 삼촌이랑……"

 "그렇구나. 또 전처럼 같은 팀이면 좋겠는데."

 "응. 나도 또 신디랑 피터와 함께 싸우고 싶어."

 

 신디는 좋아, 좋아. 하며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대전 상대는 봤어? 난 이번에 후크랑, 아! 사기꾼 잭오도 있었어. 앨리스가 아주 수리도 못 할 정도로 박살을 내주겠다며 벼르고 있더라."

 

 대전표를 건네받았을 때, 마스터 캣이 누이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한 일이란다.'

 

 누이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낸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누이 너는? 대전 상대 누구야?"

 "......움브라 팀."

 "뭐? 위치퀸이 나와?"

 "아니, 이번에 새로 참가 신청을 한 몰리라는 분과, 볼프강 씨, 그리고……"

 

 라비. 라비의 이름이 있었다. 대전표를 확인 때 부터 그 이름만 눈에 들어왔다.

 

 "그래? 힘들겠네…… 그치만 넌 강하니까, 이번에도 이길 거야! 시원하게 이기고,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도원향에서 엄청 맛있는 복숭아 아이스크림을 판대."

 "그거 맛있겠네! 꼭 같이 가고 싶어."

 

 이제 가봐야겠다며 일어서는 신디와 함께, 누이도 벤치에서 일어섰다. 곧 노을이 질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달이 걸렸다. 하지만 달은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고 새카만 공허 속에 그저 차갑게 걸쳐있다.

누이는 그 달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바라보기에 빛나는 것인지, 원래 그렇게 밝아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조금씩 어둠에 숨어드는 달빛을 그저 안타깝게 여길 수 밖에. 

 

'바꾸어 해가 되었다……'

 

 곧 달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숨어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누이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라버니……"

 

 짧은 꿈은 허무하고도 깊었다. 누이는 창 밖에서 새어들어오는 달빛이 아쉬워 창문을 열었다. 한 밤 중이라 그런지 어둠은 더욱 깊었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누이는 그 어둠을 응시하며 라비를 떠올렸다.



 운명이 정했던 이야기가 모두 무너진 후, 라비를 다시 만난 곳은 스매시레전드 대회였다. 개회식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도 거기 분명히 라비가 있음에 누이의 심장이 뛰었다. 말 한 마디 걸지도 못하고 떨어졌지만, 그래도 기뻤다. 대회에 참가하다 보면 분명히 만날 테니까. 

 그리고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 상대로 라비를 만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첫 재회때의 종목은 점령전이었다. 표시된 장소를 먼저 차지하는 팀의 승리였 하지만 누이는 그런 것 보다 눈 앞에 보이는 라비가 더 간절했다. 

 

 "하……"

 

 강한 빛처럼 자신에게로 곧장 뛰어오는 누이를 보고, 라비는 잠시 자세를 흐트리는가 싶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여전히 겁도 없이 다가오는구나!"

 

 라비에게서 검은 손길이 뻗어나와 누이를 잡아챘다. 그저 라비만 보고 달려가던 누이에게 피할 틈은 없었다. 빠르게 끌려가는 도중, 누이는 라비의 얼굴을 보았다. 변해버린 눈, 표정, 머리카락. 누이와 함께 웃어주던 라비의 얼굴이 아니었다. 

 

 "제가… 왜 오라버니를 두려워 해야 하나요?"

 

 하지만 라비였다. 모습이 변했어도 그토록 그리던 자신의 반쪽이다. 누이는 라비에게 이끌려 가까이 다가간 순간 라비를 껴안았다. 라비의 몸이 경직되는 찰나를 느꼈다.

 

 "큭!!"

 

 다음 순간 누이는 약간의 통증과 함께 하늘로 떠올랐다. 새파란 하늘이 눈 한 가득 담겼다. 

 

 꼭 껴안으면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던 상냥한 손길은 거기에 없었다. 대신 거칠게 자신을 밀쳐내던 어둠만이 있었을 뿐. 공중에 높이 떠올라, 누이는 눈을 잠깐 감았다. 크게 아픈 건 아니었다. 다만 처음이었다. 라비가 자신을 밀쳐낸 것이. 자신을 밀어내는 마음에 마주한 것이. 

 충격 없이 바닥에 내려앉아 눈을 뜨니, 라비는 다른 이를 상대하러 달려가는 중이었다. 

 

 "오라버니!"

 

 누이는 라비를 크게 부르며 빛을 뻗었다. 라비의 몸이 빛에 걸려 누이 쪽으로 당겨졌다.

 

 "이게…!"

 "오라버니, 어째서 저를 피하시죠?"

 

 누이는 자신에게로 당겨지는 라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오라버니는……"

"누이!"

 

찰나였다. 차마 맺지 못한 목소리가 어둠에 잠겼고, 마스터 캣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후 누이의 시야는 라비가 뻗어온 검은 기운에 휩싸여 가려졌다. 어둠에 잠기면서도, 그래도 누이는 생각했다.

 

'오라버니의 손길이야.'




"누이, 다음부터는 꼭 침대에서 주무시오. 창틀에 엎어져서 잤다고 하면 누님께 내가 혼나니 말이오. 아니면 혹시 누이도 고양이로서 살아갈 결심이 든 것이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해요……"

 

누이가 라비와의 재회를 생각하다 그대로 잠이 든 바람에, 아침에 현자회의 숙소는 아주 난리였다. 열린 창틀에 몸이 반쯤 걸려있는 누이를 보고, 누이를 깨우러 와 준 안드로이드들이 에러 메시지를 사방팔방 띄우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이 에러 메시지는 곧 7D로 들어갔고, 밤새 보안 모니터를 보며 졸던 로빈이 화들짝 놀라 비상 버튼을 눌렀으며, 마침 새벽 수련을 하고 돌아오던 마스터 캣은 숙소에 울리는 경보음으로 온 몸에 털이 곤두서 칼을 빼 들었고, 곧 문을 부수며 들이닥친 로빈과 스노우가 누이와 마스터 캣을 번갈아 보며 경악했다.

 

곧 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금방 상황이 정리되었지만, 아직까지 마스터 캣의 등털은 삐죽 서 있었다. 

 

"로빈 씨는 일어나는 저를 보고 기절해버렸고, 스노우한테도 혼났고, 삼촌도 잘못하면 잡혀가게 할 뻔 했네요."

 

누이가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 캣이 폭신하고 따끈한 손을 누이의 머리에 얹어주었다.

 

"일부러 한 일도 아니지 않소.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되는 것이오."

"그래도, 그래도요. 저 때문에……"

 

순간 누이는 저 때문에, 라는 말이 이상하게 걸려 입을 다물었다. 마스터 캣은 아무 말 없이 폭신폭신 누이의 머리를 두드려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괜찮다고 했으니 이제 잊어버리시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사건이지 않소. 슬슬 경기장으로 갈 시간이오."

 

마스터 캣의 골골거리는 웃음소리를 보며 누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나 때문에.  그래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누이는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안개 속에 가려진 것 처럼 뿌옇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쩐지 그리운 감정 같기도 했다. 

 

'됐어, 잊자. 오늘은 오라버니를 만나는 날.'

 

사소한 감정에 매달릴 여유는 없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라비와 만나는 날이었기에.

 

화려한 팻말을 따라 환호성과 함께 포탈을 통과하면 눈부신 개막 알림 표시와 함께 경기가 시작된다. 

첫 재회때와 같이, 이번 경기도 점령전. 경기장 가운데 표시된 부분을 팀 컬러로 동기화시키면 이기는 게임이다. 상대방이 차지하지 못하게 지키고, 쫓아내는 단순한 싸움이다.

 

누이는 이런 싸움이 싫었다. 점령전 뿐만 아니라 다른 경기도. 다투고, 욕을 하고, 치고 받는 것이 싫었다.

 

"그러니까 빨리 끝내 드릴게요, 오라버니."

 

반대편에 서 있는 라비를 향해 중얼거렸다. 같은 팀인 마스터 캣과 브릭은 듣지 못한 듯 점령지를 향해 달려갔다. 

누이도 그 뒤를 따라 달리며 손을 뻗었다. 점령지 한 가운데에 빛 기둥이 내리쳤다. 달려오던 라비의 팀이 움찔, 하며 뒤로 물러났다. 

누이는 싸움을 싫어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강하기 때문에 싸움을 싫어하고, 그만큼 빠르게 제압할 수 있다.

누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또 경기장에서 만나다니, 재밌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이의 발 검은 기둥이 솟구쳤다. 누이는 일부러 그 기둥에 맞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라버니."

 

공중에 떠오르자 보이는 풍경은 어젯밤부터 그렇게 그리던 눈동자. 몇 번 경기장에서 마주친 후 부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누이의 오빠였다.

라비가 주먹을 뻗기 직전, 누이의 주변에 빛의 구가 퍼져나가 라비를 튕겨냈다. 

 

"좋아, 덤벼봐라! 좀 더 즐겁게 해 보라고!"

"......"

 

다른 때 같았으면 상냥한 오라버니로 돌아와달라고 대답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지난 밤의 꿈. 그리고 희뿌연 감각. 누이는 입을 꾹 다물고 경기에 집중했다.




"큭, 이게…!"

 

쿵, 하고 큰 소리가 나며 라비의 몸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경기중인 레전드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관중들은 그 모습을 보며 '햇님의 은혜'라며 환호를 보냈다. 어둠을 제압하는 누이의 빛은 그야말로 해의 축복으로 보였고, 그런 힘을 쓰는 누이는 시놉시티 시민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 되어갔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습구나, 그렇게 약한 네가 나한테 맞설 수 있다는 게!"

 

라비의 머리에 남은 HP양이 일렁이며 표시되었다. 툭 치면 리타이어될 정도였다. 분명 라비는 허세를 부리는 중이다. 하늘에 잠시 떠올랐던 누이는 라비에게로 천천히 내려갔다. 빛이 라비의 얼굴에 한 가득 드리웠다.

라비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꽉 쥐고 누이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을 보고 있었다. 눈이 부시다 못해 멀 정도였지만, 그래도 라비는 어둠이기에 빛의 바로 옆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약하다고 하셨죠?"

"뭐?"

"저는 약하지 않아요."

 

라비의 눈이 일렁였다. 어젯밤 보았던 라비의 눈동자처럼. 누이의 빛줄기에 너덜너덜 찢겨나간 라비의 피부가 검게 물들었다. 누이는 가만히 손을 뻗었다. 라비는 주먹을 다시 고쳐잡으며 반격할 틈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까 드디어 알 것 같아요.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누이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라비는 힘껏 뻗던 주먹을 중간에 멈춰버렸다.

 

"해와 달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무슨…!!"

 

라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누이의 손은 어느새 라비의 볼에 닿았다. 

 

"오라비와 바꾸어 해가 되었다."

"닥쳐!!"

 

라비가 서둘러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빛의 구가 라비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빛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어둠이 존재한다. 피하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감옥처럼.

 

"저 때문에…… 오라버니였어요."

 

누이의 손가락이 라비의 볼을 가만히 쓸었다.

 

"저 때문에……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오라버니가 이렇게 약한 사람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 이런 모습을 막을 수 있었을거에요……"

 

어머니와의 대화, 언젠가 느꼈던 감정, 그때 했던 말은 전부 라비에게 향하고 있다. 누이는 뿌옇던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그것을 라비에게 쏟아냈다. 두 손을 뻗어 라비의 얼굴을 감싸며.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저와 '바꾸어' 어둠이 되어야 해요. 제발 돌아오세요."

 

라비는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제정신을 찾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느쪽이어도 누이의 이 말과 행동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너무나 달라진 동생에게서.

 

"네…가…뭘 안다고…! 그런 운명이…!!"

"오라버니와 저를 헤어지게 하죠. 하지만 다시 만나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둠과 빛을 반복하며 우리는 함께할 거에요."

 

누이는 빛으로 가득찬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에요."

 

라비의 앞에 서 있는 자는 산신의 힘을 물려받아 해가 된 자였다. 라비의 기억 속 누이는 라비가 운명에서 도망치며 사라졌다. 어둠이 도망쳤기에 드디어 해의 힘이 온전히 누이의 것이 되었다. 

라비는 알 수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구원을 바라고 도망쳤기에 여기, 이 빛 앞에 도달했다는 것을.

 

"돌아가요. 저와 계속 함께……"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이별을 반복하며, 영원히. 

 

"으, 아, 아아……!!!"

 

라비는 이윽고 울부짖으며 어둠을 뿜어냈다.




"자, 누이의 승리를 축하하며!"

"고마워 신디."

 

누이가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었다.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감돌았다. 이내 한 입 베어무니 차갑게 녹아내렸다.

 

"그런데 경기 중간에 카메라가 엄청 빛나더라. 완전 새하얘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니까? 그래서 엄청 걱정했잖아."

"...태양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걸지도."

 

누이는 또다시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라비를 떠올렸다. 볼프강만 아니었으면, 아니 이 경기가 아니었으면 정신을 놓을 듯 울부짖던 라비를 두고 떠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음 기회가 있잖아."

"뭐? 이겼는데 벌써 다음 경기를 생각하는 거야? 너도 참 대단하다."

 

누이는 방긋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감정의 이름을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 곧게 뻗어갈 일만 남았다.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라비와 바꾸어 해가 되었다. 그것이 라비와 누이의 운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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